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주열 열사 사망사건 (문단 편집) == 가해자 == 가해자 박종표는 [[일제강점기]]부터 [[독립운동가]]들을 모지게 고문했던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다. 해방 이후 철도청 부산공작소에서 일하다가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지만 검찰은 박종표에게 공민권 3년 정지라는 가벼운 형을 구형했다. 근데 그마저도 재판부는 아예 무죄를 선고하며 박종표를 풀어줬다. 당시 박종표는 재판정에선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가 터지자 마산에서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위를 했지만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도록 명령을 내린 인물이 바로 이 사람이었다. 더 나아가 박종표는 김주열이 죽었다는 소식을 확인하자 시신을 지프차에 싣고 마산시 월남동 마산세관 앞 해변가에서 큰 돌을 여러개 매달아 바다에 빠뜨렸다. 박종표는 4.19 이후 혁명재판소에서 시신 유기와 최루탄 발사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나중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며 [[박정희]] 정권의 사면으로 최종적으로 7년으로 감형됐다. [[3.15 의거]]사 편찬 위원장이자 지역 신문 언론인 홍중조의 증언에 따르면, 박종표는 출소 후 일선에서 물러난 다음 [[1994년]]까지 부산의 서면에서 식당을 운영했으며, 그와 동료 지간인 마산 경찰들도 자주 왕래를 했었다고 한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것이 전무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